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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1989년 어느 축구부 이야기

[38] 축구부 - 에필로그 식당은 여전히 시끄럽다. TV에서는 아직 세계청소년축구대회 B조 예선전이 진행 중이다.우루과이를 맞아 우리 팀이 생각보다 잘 싸우고 있다. “센터포드 김동명 선수의 플레이가 살아나서 그런지 우리 팀의 전반적인 플레이가 살아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현재 김동명 선수가 체격이 좋아 상대 수비수들의 밀착 마크도 쉽게 떨쳐내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 선수들의 플레이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아니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축구 속에 스타는 없다. 붕어빵 속에 붕어 내장이 없듯이 축구 속에는 결코 스타란 없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 *** 동북고와의 시합에서 명구는 동북고의 마지막 키커의 공을 막지 못했다. 4대 3으로 우리는 졌다. 우리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렇게 5분 이상을 .. 더보기
[37] 축구부 - 선택되는 운명 (3) 운명 우리는 모두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앉는다. 재형이가 감독에게 간다. 전후반을 비겨서 승부차기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승부차기를 할 사람들을 지시 받기 위해 주장이 감독에게 간 것이다. 만일 준결승이나 결승이라면 무승부시에 연장전에 들어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모두 승부차기를 한다. 승부차기는 정말 피를 말리는 도박과도 같다. 선수들에게는 더더욱. 감독에게서 돌아온 재형이가 한 사람씩 번호를 찍어준다. “ 1번 규환이, 2번 종원이, 3번 상면이, 4번 경협이, 5번은 나야.” 공을 찰 애들은 자신들이 차게 될 것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지정을 받으면 모두 죽을 상이 된다. 골을 넣으면 다행이고, 못 넣으면 모든 원망을 다 들어야 하니까. 우리 다섯 명은 줄을 맞춰서 앉는다. 상대편 .. 더보기
[36] 축구부 - 선택되는 운명 (2) 미친 세상 처절하게 전반전을 싸우고 돌아오는 우리를 감독은 교실 뒤편으로 가란다. 후배 녀석 하나가 몽둥이를 준비하러 어디론가 간다. 우리는 운동장 뒷편으로 우르르 가서는 감독 앞에 반원으로 모인다. 곧 있으니까 후배 하나가 몽둥이를 가지고 온다. “벽에 기대고 엎드려.” 감독은 몽둥이로 발을 탁탁 턴다. 난 그 모습에 화가 난다. 사실 우리가 전반전을 제대로 뛰지 않았던 게 아니다. 우리는 엄연히 실력이 모자란 것이다. 그런데 감독은 또 몽둥이를 들고 있으니. 재형이가 먼저 엎드리자 감독은 야구를 하듯 몽둥이로 엉덩이를 후려친다. - 빡 주장 재형이의 허리가 휘청한다. 정말 엄청난 힘으로 후려친 것 같다. 겨우 한 대 맞고 재형이가 몸을 비틀다니! 감독은 있는 힘을 다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마치 야구 .. 더보기
[35] 축구부 - 선택되는 운명 (1) 그들과 싸우다 동북고와의 시합은 오후 3시경에 있다. 점심은 가볍게 먹으라는 감독의 지시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지시가 없어도 실컷 먹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긴장한 탓에. 점심을 먹으며 오늘 점심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방정맞은 생각을 한다. “옘병할, 절대 그럴 리 없어! 내일도 우리는 점심 먹으러 올 거야!” 난 나즈막히 소리친다. 밥 먹고 있는 애들의 대화 속에서도,시합을 가기 위해 운동장비를 챙기는 모습 속에서도 절대 마지막이라는 여운을 주지 않으려 다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간 되면 내일 모레, 요 근처로 물고기 잡으러 가자.” 주문진고등학교 운동장으로 가는 길에 경협이가 제안을 하나 한다. 경협이는 이곳 출신이라 물고기 잡을만한 곳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내일 모레면 우리.. 더보기
[34] 축구부 - 싸움 (4) 두렵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오전에 잠깐 몸을 풀고는 시합을 보러 간다. 우리가 속한 B조는 어제 경기로 8강 진출 팀들이 다 결정되었고, A조, C조와 D조는 각각 16강 한 경기씩 남겨 두고 있다. 운동장에서는 부산수고와 연수고의 D조 8강 진출 팀을 가리는 시합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 전반전이 거의 끝날 무렵이다. 부산수고와 연수고는, 사실 게임을 보지 않고도 승패는 이미 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부산수고는 일 년에 한 대회 정도는 4강에 진출하는 팀이지만 연수고는 별 볼일 없는 팀이란 걸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더욱이 부산수고는 두 달 전의 다른 전국대회에서 이미 준우승을 한 팀이다. 여기서 이기는 팀이 경신고와 붙게 된다. 아, 그런데. 스코어를 보니 1대0으로 연수고가 이기고 있다! 우리는 .. 더보기
[33] 축구부 - 싸움 (3) 내가 만일 너라면 오후 4시쯤 되어 동북고가 부평고를2대 1로 이기고 올라갔다는 얘기를 듣는다. 드디어 4강의 마지막 상대가 누구인지 결정된 것이다. 원래 우리는 그 경기를 보려고 했다. 그러나 동국이는 코뼈 때문에 병원에 갔고, 나와 몇몇 애들은 발목과 근육통 등의 이유로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갔기에 경기를 보러 갈 수 없었다. “골이 별로 안 나서 그렇지, 거의 동북고의 하프매치 게임입니다.” 경기를 보고 온 후배들이 하는 얘기다. 운동장 반을 접고 게임을 했다는 얘기다. 그 말에 과장이 좀 섞여 있겠지만 그만큼 동북고가 잘했다는 얘기다. “부평고는 링커 보는 애 혼자서 하다시피 했습니다.” 부평고의 링커는 어제 체육주임이 칭찬했던 선수다. 얘기를 듣고 있으려니 동북고의 경기를 못 본 게 무척 아쉽다.. 더보기
[32] 축구부 - 싸움 (2) 안양공고와 후반전 “동국이 이리 나와.” 감독은 동국이를 지목한다. “너가 지금 못해서 때리는 게 아냐. 지금 너가 너무 흥분하고 있는 것 같아서, 진정하라고 때리는 거야.알았어?” 감독의 목소리는 무척 점잖았다. “네, 알겠습니다.” - 짝 짝 짝 때리는 감독의 표정도 맞고 있는 동국이의 표정도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이다. “너네들, 괜히 마음만 앞서고 있는데. 그러면 지는 거야.알아?” - 네! “차분히들 하라고. 우리가 연습 때 하던 정도만 하면 저 정도는 쉽게 이길 수 있어.” 감독의 말은 오늘따라 무척 점잖다. 우리는 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국이, 너 저쪽 팀한테 무슨 감정 있어?좀 천천히 해.” 감독의 말을 듣는 순간, 난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뻔히 알면서도 저런 말을 하다니. “자.. 더보기
[31] 축구부 - 싸움 (1) 안양공고와 시합 - 와아 경쟁에 찬 눈빛들, 응원인지 욕설인지 잘 분간되지 않는 소리들, 핏발이 서있는 목줄, 발 밑에 어지럽게 널려져 있는 담배꽁초들, 언성이 높이는 소리들… 많이 봐오던 장면들과 소리들. 익숙하고도 싫은.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나왔는데도 괜히 속이 거북하게 느껴진다. - 와아 와아 목표를 향한 아우성들. 이 아우성 후에 있을 기쁨의 외침과 슬픈 침묵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표가 있다. 그러나 서로의 목표가 일치하면 경쟁이 된다. 그리고 경쟁이 심해질수록 많은 슬픔이 생겨난다. 나도 그 경쟁 속에 있는 한 사람임을 깨닫는 순간, 그걸 쉽게 얻을 수 있는 슈퍼맨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는다. 도망치고 싶다. 스탠드 한쪽에 짐을 내려놓고 몸 풀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다. 화장실.. 더보기